풍경이 있는 이야기

2021년 4월 13일 산행

꿈낭구 2021. 4. 14. 08:44

2021년 4월 13일

어제 비가 살짝 내려 우비 챙겨들고 산에 갔는데
사람들이 없어 완죤 우리 둘만의 세상이었답니당.
비 그친 뒤의 봄산이 얼마나 아름답던지요.
둘이서만 누리기엔 너무 아까워서
울이웃님들과 함께 하려고
사진을 많이많이 찍었어요.

저희랑 함께 천천히 산에 오르시는겁니다잉?
아참! 이 길의 이름은
제가 오래오래 전에 Surprise라고 이름 지었어요.

진달래의 뒤를 이어 산철쭉이 피기 시작했어요.
연분홍빛 꽃송이가 비를 머금고 수줍은듯 반기네요.

꽃내음과 나무에서 나는 싱그러운 냄새 느껴보세요.

빗방울이 보석같아요.

아마 이 담주쯤이면 이 길은 온통 연분홍 산철쭉이
오르는 내내 길 양편으로 쫘악 피어서
황홀한 꽃길이 될겁니당.

저는 오르는 내내 온몸과 마음으로
숲을 즐기는데 여기까지 오르는 동안

그동안 못만났던 풀꽃들에게 인사를 나누고

새들의 노래소리에 안부를 묻고

건너편 솔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답장도 보내면서 정말 행복했는데

어때요? 좀 쉬어갈까요?

쨍하게 화사한 진달래꽃 보다

핑크빛 산철쭉이 저는 더 예뻐 보이더라구요.

저는 일 년 중 요맘때의 산이 젤루 이쁘더라구요.
이틀 동안 비가 흠뻑 내려서 연초록 잎들과
나무들의 대비로 정말 아름다워요.

여기까지 오르는 동안 강아지를 안고 내려오는
아주머니 한 분 말고는 한 사람도 못만났어요.
새소리와 바람소리 말고는 우리의 발자욱 소리뿐.

 

첫 능선에 가까워지자 구름이 내려오니
산은 금세 신비스러운 모습이 되네요.

이른봄이면 이 조붓한 길은 진달래꽃길이 되지요.

맞은편에 보이는 능선까지 가려면 한참 더
올라야 해요.

계속 능선 따라 올라가면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지만
우리의 목적지는 정상이 아닌 비밀스런 장소라서
이곳에서 계곡쪽으로 내려갈겁니다.

이 바위에 앉으면 맞은편 산의 능선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그렇게 싱그러울 수 없답니다.
예전에 이곳에 오르던 때만 해도
여기 앉아 차를 마시면서 건너편 산의 꽃들을 감상하곤 했었는데
이젠 나무들이 자라서 시야를 가리워서 볼 수 없어요.

시누대 숲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에덴'입니다.

아이 어릴적에 거기까지 데리고 올랐더니
너무나 아름답고 좋았던지 아이가 에덴이라 이름지었지요.ㅎㅎ

오늘 해 전에 산행을 끝내기나 할까요? ㅎㅎ
Surprise에서 계곡쪽으로 내려가는데 조심조심
여기서 부터는 잘 따라오셔야 해요.
길도 좁고 한 쪽은 완죤 낭떠러지 거든요.
난코스가 딱 한 군데 있는데 커다란 바위에서
네 발로 기다시피 해야 내려갈 수 있었거든요.
글두 지금은 몇몇 아는 이들이 찾는지라
예전에 비하면 양반입니당.

그곳에서 시원한 바람 한 줄기에 꽃잎이 후두둑 떨어집니다.
가끔씩 기대고 하늘바라기를 하곤 하던 나무와
잠시 놀다가는것도 좋아요.

꽃잎으로 편지를 썼어요.
비에 젖은 나무라서 꽃잎편지 쓰기가 좋아요.

나무를 올려다보니 아득하게 높아요.

나무 밑둥에는 거기 깃들어 사는 생명들과
찾아온 손님들이 있네요.

이 근처에 다래나무가 있어서 언젠가는
통실통실한 다래를 엄청 주워먹었지요.ㅎㅎ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나누고 가던 길을 내려가

숲속의 꽃길입니다.

풀잎 위에 꽃잎이 내려앉았네요.

마치 자기가 피운 꽃인듯...

계곡의 물소리와 또 놀다 갑니다.

꽃잎을 태우고 이 물이 저 아래 폭포로 내려갈텐데...

계곡의 물이 때로 나뉘기도 했다가

다시 작은 폭포가 되었다가...

물소리에 새들의 노래가 잠겨드는곳.

이곳에서 내려가지 않고 다시 살짝 올라가면

바로 이곳.

저만의 아지트가 있어요.

여기 바위에 앉아 아이랑 건너편 산을 바라보며
도시락도 먹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었지요.
그땐 쫄랑쫄랑 방학때마다 곧잘 따라다녔는데
나중에 커서 식물학자가 되겠다면서
이 산행을 엄청 좋아했었거든요.

산딸기를 따 먹으며 가르쳐 준 동요를

아이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잎새뒤에 숨어숨어 익은 산딸기

지나가던 나그네가 보았습니다.

딸까 말까 망설이다 그냥 갑니다.

우리 별장이라며 구경시켜준다니 호기심 가득해
따라나섰다가 날다람쥐 따라잡기 힘들다며
찡찡대는 동무를 구슬려가며 델꼬 이곳에서
차를 마시고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핀 멋진 봄날
이곳에 앉아 이어폰 한 쪽씩 나눠 끼고
시와 음악이 곁들여진 봄날 소풍에 동무는 너무나 좋다며 눈물을 흘렸었지요.

그 비밀스런 장소에 남푠을 초대했어요.

정말 정말 아껴두고 싶은 이곳에 배낭을 걸어두고

나란히 앉아 커피를 마시며

찻잔 속에 담긴 나무와 풍경들을 함께 즐겼는데
어때요? 로맨틱하지 않나요?ㅎㅎ

다음 코스가 제가 젤루 좋아하는 곳인데
기대하셔도 됩니당.ㅎㅎ

좁다란 길을 걸을땐 한눈 팔면 안 돼요.

이름모를 산새들이 서로 화답을 하고 야단 났네요.

요맘때의 숲은 날마다 새옷으로 갈아입나봐요.

비에 젖은 나무의 수피가 물감을 칠한듯 해요.

쓰러져 몸을 기대는 나무까지도

온전히 받아주는 너그러운 숲속 나라 입니다.

가슴이 설렙니다.

조금만 더 내려가면 이 숲에서

제가 젤루 좋아하는 곳이 기다리고 있거든요.

하늘이 나무에 가리워져서 때론 컴컴해지기도 했다가

그곳을 지나면 나타나는 곳.

오늘의 하이라이트.

이곳입니당.

저는 이곳을 매직밴치라고 불러요.

아무리 힘들고 슬프고 어렵고 지쳤을때라도

이곳에 앉아 숲을 바라보면

금세 세상의 온갖 시름이 사라지는

마법의 밴치랍니다.

이곳에 누워서 하늘바라기도 너무 좋구요.

늦은 오후 햇살이 나무 사이로 내려앉는 모습 또한 환상입니다.

이 아름다운 세상을 맘껏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치유의 숲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아주 멋진 장소인데

제가 젤루 좋아하는 코스랍니다.

내려오는 길에 만난 새친구.

이름을 알아봐야겠어요.

숲을 가로질러 내려오느라고

시원스럽게 쏟아져 내리는 폭포를 만나지 못한게 아쉽고

지난번에 저만 아는 나무에 두고 온 편지도 궁금해지네요.

나무는 늙어도 아름다워요.

이 나무는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 엿들었을텐데

 

숲에 나만의 나무를 하나 정하는것도 좋아요.

속 깊은 이야기를 들어도

입이 무거워 걱정할 필요도 없으니까요.

이 계곡을 따라 걷다보면

음이온으로 샤워를 하는것 같아요.ㅎㅎ

머리가 맑아지고

답답했던 마음도 홀가분해지는

자연의 파장이 신비롭기만 합니다.

아침 햇살에 여울지는 모습이 특히 아름다운 곳입니다.

이제 두 번째 폭포를 향해 떨어지기 전에

숨을 고르는 곳입니다.

이렇게 살짝 미끄러져 내리다가

바위 사이로 다시 재잘재잘 

목욕하러 놀러오는 새들에게 아낌없이 내어주기도 하는 곳.

작은 폭포로 떨어져 내립니다.

물소리만 들어도 마음까지도 시원해지는

얼레지 군락지로 몇 해 전부터

사람들로부터 시달림을 받게 된

안타까운 곳이기도 하지요.

아래로 아래로 향해 흘러가는 물소리를 옆에 끼고

이제 숲길을 걸으며 호흡을 고르는 길입니다.

처음 이곳에 혼자 왔을적에

맞은편에서 커다란 개 한 마리가 내려오는 바람에

너무 놀랍고 무서워서 벌벌 떨었던 생각이 납니다.

이렇게 좁은 길에서 하필이면...

개를 데리고 아침산책을 나오신 아저씨께서

상황을 파악하시고 개를 부르자

멈춰 서서 지나가기를 기다려줘서 가슴을 쓸어내렸던 생각이 납니다.

산속에서 들개를 만난줄 알았거든요.ㅠㅠ

하롱하롱 진달래꽃이 진 그 자리에

개진달래라 부르는 산철쭉이 피어나고 있어요.

어디서 이렇게 향기로운 냄새가 나나 했더니

으름덩굴이 꽃등을 켰네요.

이쁘기도 하여라.

그냥 지나치는건 예의가 아니지요.

이제 숲을 빠져나올 시간입니다.

몇 시간 동안 정말 너무나 행복했던 산행입니다.

다음을 기약하며 나무와 작별을 고합니다.

숲은 언제나 늘 세상사에 지친 영혼들을 

소리없이 품어주고 다독여주며 위로해주는

정말 좋은 선물 같은 존재랍니다.

이제 작별을 고하는 시간.

충전 빵빵하게 하고

다시 씩씩하게 세상을 향해 나아갑니다.

깔깔마녀라는 별명으로 부르곤 했던 주름조개풀을 만나서

잠시 안부를 묻고

너무나 화사해서 때론 부담스럽기도 한 

등산로 입구의 겹벚꽃.

언제 또 올거냐고?

너 떠나기 전에 꼭 다시 오마.

초록으로 물든 가슴으로 산에서 나왔습니다.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는...

돌담 곁의 늙은 보리밥 나무에

보리밥이 익으면 새들의 잔칫날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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