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꽃 사설
- 윤금초 -
얕은 바람에도 연잎은 코끼리 귀 펄럭이제.
연화차 자셔 보셨소?
요걸 보믄 참 기가 맥혀.
너른 접시에 연꽃이 쫙 펴 있제.
마실 땐 씨방에 뜨거운 물 자꾸 끼얹는 거여.
초파일 절에 가서 불상에 물 끼얹대끼.
하나 시켜놓고 열 명도 마시고 그래.
그 향이 엄청나니께.
본디 홍련허구는 거시기가 달라도 워느니 달러.
백련 잎은 묵어도 홍련 잎은 못 묵거든.
연근은 둘 다 묵지마는 맛이 영판 틀려.
떫고 단면이 눌눌한것이 홍련이제.
백련 뿌리는 사각사각하고 단면도 하얘.
백련은, 진창에 발 묻고설랑 학의 날갤 펼치제.
* 강신재의 <우리 마을 이야기-전남 무안군 일로읍 복룡 백련마을>패러디*
윤금초 선생님.
이 사설시조 처음 읽어본 날
저 연화차 마시러 갔어예.
그 향이 엄청나다고 해서 저도 동창들 우르르 몰고 가서
달랑 하나 시켰어예.
진짜로 커다란 접시 같은 데 한가득 펴지더예.
차례로 벌어지는 꽃잎을 보고
"엄마야, 엄마야!" 막 소리 질렀어예.
그리고 씨방에 뜨거운 물 자꾸 끼얹어가며
오래오래 마셨어예.
마음 좋은 찻집 주인이 오래오래 많이 마시면 흰머리도 검게 된다카면서
자리를 비껴주데예.
달짝지근하면서도 은은한 그 차를 마시면서
제가 잘 가는 정약용 생가 근처 연지에서 본 백련 봉오리 이야기를 했어예.
쭉 뻗은 가지 끝에 달려 있는 하얀 봉오리가
정약용 선생의 힘 있는 붓끝 같았다고예.
파란 하늘이 유배지로 보내준 아내의 치마폭 같아
거기 두 마리의 새와 향기로운 매화 그림이 그려질 것 같았다고 말했어예.
모두 다 웃었어예.
웃음소리에서 백련 향기가 났어예.
'초파일 절에 가서 불상에 물 끼얹대끼'는 참 대단한 비유네예.
나이롱이긴 하지만 카톨릭 신자라서 그런 아름다운 불교 의례는 해보지 못했거든예.
그래도 '진창에 발 묻고설랑 학의 날갤 펼치'는 것은 정말 실감났어예.
백련차 마시고나니 진창에 빠져 있었던 제가 학이 되어 날아갈 것 같았거든예.
<강현덕·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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