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이야기

1년 만의 산행

꿈낭구 2020. 4. 3. 18:30



얼마만의 산행인가...

작년 봄 내내 여행을 떠나는 바람에 못갔었고

늦여름에 수술을 하고 몸이 불편해서 못갔으니...

일 년 중 가장 산이 이쁠 때가 바로 요즘인지라

오늘은 아주 조심스럽게 산에 가보기로 했다.

등산화도 등산복도 어느새 낯설어서

스틱을 의지하고 산에 올랐다.

가장 먼저 나를 반긴 산수국.

아주 작은 꽃을 위해 곤충들을 유인하기 위해

가짜 꽃잎을 키우느라 씨앗도 포기한

나비같은 꽃잎 아닌 꽃잎이 지난 여름의 흔적을

고스란히 매달고 있다.

놀랍게도 새잎이 그 가지 위에서 아래에서 초록초록한 빛깔로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고 있다.

비바람에 스러져 흔적없어질 무렵이면

다음 세대를 위한 어여쁜 가화가

벌 나비들을 불러들이겠지.

내가 정말 좋아하는 개별꽃이 어느새 이렇게  활짝 웃는 얼굴로

양지바른 숲속 작은 돌틈 사이에서 나를 환영한다.

그래...잘 있었니?

폭포에서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숲에 우렁차다.

바로 이곳이 작은 폭포다.

시원스럽게 흘러내리는 물소리에

나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화답을 한다.

물살위로 햇살이 쏟아져내려

여울지는 모습을 바라보는것도 참 즐겁다.

이곳이 바로 얼레지의 군락지였는데

몰지각한 사람들의 욕심으로

겨우 폭포 벼랑끝자락에 이렇게 조금 남아있다.

내가 처음 이곳을 발견했을때만 해도

온통 보랏빛 얼레지꽃이 가득했더랬다.

연두빛 어린 새잎이 봄햇살을 받아

윤이 나서 반짝인다.

산은 온통 연초록으로 물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는

생명의 빛깔에 취해

걸음을 뗄 수가 없다.

늙은 나무의 그루터기에서 개별곷이 옹기종기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봄을 노래하고 있다.

너무나도 가냘프지만 사랑스러운 내 친구다.

이끼가 별처럼 반짝인다.

가까이 다가가서 눈을 맞추고 보니

이끼들도 새로운 생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이 솜털 보송보송한 여린 잎을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으리오.

나무들은 저마다 봄을 맞이하느라 열심이다.

꽃망울이 방긋 웃으며 잠시 놀다 가란다.ㅎㅎ

숲은 연분홍 물결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곳.

숲속의 매직벤치에 앉아

파스텔톤으로 물들어가는 숲속의 봄을 음미한다.

내 키 보다 더 높게 핀 진달래꽃에게도 인사를 나눈다.

햇빛을 얼마나 먹었느냐에 따라서

진달래꽃의 빛깔도 미세하게 다르다.

여리디 여린 이 아이는

눈만 흘겨도 툭 떨어져내릴것만 같다.

너무나 가냘프다.

야무진 꽃송이 한 줌을 고이고이 집으로 뫼셔다가

이 봄 진달래화전을 즐겨볼란다.

누가 나를 따라올거니?

돌 사이로 졸졸거리며 흐르는 물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맑은 겨곡물에 비친 나무 그림자도 예술이다.

해마다 피는 진달래꽃인데도

왜 이다지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지 모르겠다.

쉬엄쉬엄 오르다보니

어느새 큰 폭포까지 이르렀다.

아래로 힘차게 쏟아져 내리는 물소리에

잠시 앉아 쉬어가기로 했다.

오늘은 진달래꽃을 좀더 즐기려고

왔던 길로 돌아가지 않고

능선쪽으로 올라보기로 했다.

이 길은 아주 오래전 울딸랑구 초딩시절에

우리만 아는 비밀스런 우리의 별장이 있는 곳이다.

이 진달래꽃 사이로 보이는 바위 위에서

맞은편 산을 바라보면 얼마나 아름다운지...

울딸랑구와 함께 이곳에 앉아

노래를 부르곤 했었다.

오늘은 남푠과 함께 잠시 이곳에 머물며

추억에 잠겨보았다.

우리만 알던 은밀한 장소인데

제법 여러 사람들의 발길이 스쳐 지나간 흔적이 보인다.

진달래꽃이 키 보다 훌쩍 높게 피어

올려다보면 온통 핑크핑크...

저 멀리 산 정상이 보인다.

surprise.

아이와 내가 이름지은 아기자기한 산길이다.

능선을 따라 걷노라면

봄이면 온통 진달래 터널이었는데

여러 해 전 간벌로 아쉽게도 그 멋진 풍경을 잃고 말았다.

에덴으로 올라서 surprise로 내려가거나

반대로 에덴으로 내려가기도 하는

가장 많이 오르내렸던 길이기도 하다.

에덴은 울딸랑구가 지은건데

ㅎㅎ울가족들이나 내 친한 벗들만 아는 이름이다.

이 코스 말고도

연인의 오솔길이라는 아주 오붓한 길도 있다.ㅎㅎ

내가 이 산에서 건강을 회복했었으니

나에게는 어쩌면 알프스 보다도 소중하고 귀한 산이기도 하다.

나무 하나 하나

지형지물 하나 하나까지

내 마음이...

내 기도가 담겨져 있는 곳이다.

오후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우리 말고는 인적이 드물다.

가끔씩 홀로 산에서 내려오는 이들 몇을 만난게 전부이니.

산새들의 지저귐이 싱그럽다.

우리만 보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풍경이다.

울언니들과 함께였음 얼마나 좋아할텐데...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해야 해서

만나고 싶어도 조심해야해서리...

세상에나...어쩌면 이렇게도 귀엽고 앙증맞을 수가 있을까...

하늘바라기로 잠시 누워

오색딱따구리의 활약을 훔쳐보기로 했다.

딱따구리는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부리로 나무를 쪼아대며 분주하다.

쉬엄쉬엄 내려오는 길은

다리가 불편한 내게는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했다.

그 와중에도 눈길을 잡아끄는 어린 새싹들.

오후의 햇살이 능선위로 점점 기울어진다.

서둘러 내려가야는데

때를 놓치면 다시 일 년을 기다려야만 볼 수 있는

이 소중한 풍경을 좀더 즐기고 싶다.

어린 잎 위에도 오후의 햇살이 내려 그림자놀이를 하는듯...

첫 산행이라 조심스러웠지만

충만한 산의 정기에 너무너무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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