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이야기

봄날의 산행

꿈낭구 2021. 3. 16. 20:37

2021년 3월 16일 화요일

거의 일 년 만에 찾은 산.

황사가 심하다기에 황사마스크로 무장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개별꽃을 만나러 숲에 들었다.

아주 낮은 자세로 무릎을 꿇어야지만 

가까이서 개별꽃과 눈을 맞출 수 있다.

해마다 숲속 계곡 옆 그늘진 바위틈에

오후 햇살이 깊숙하게 들자

꽃문을 활짝 열었다.

어쩜 이렇게도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큰개별꽃은 수술이 10개에

암술 3가닥이고

꽃받침에 털이 없다.

보고 또 봐도 하염없이 들여다보고 싶기만 한 꽃이다.

곧 무리지어 낮게 핀 꽃잎이 바람에 살랑대겠지?

얘는 왜 점이 없느냐고?

수술이 펼쳐지면 꽃잎이 점박이 처럼 보이는거. ㅎㅎ

길고 좁다란 꽃잎위에 수놓은듯...

개별꽃은 종류도 참 다양하다.

큰개별꽃, 개별꽃,참개별꽃, 덩굴개별꽃,별꽃,쇠별꽃...

이 개별꽃은 숲개별꽃이라 불러주기로 할까?

큰개별꽃은 꽃잎과 꽃받침 조각이 5~8개로 많고

꽃잎은 좁고 뾰족한 편이며 꽃이 한 줄기에 1개만 달리는 것도

개별꽃과의 차이점이라고 한다.

개별꽃은 꽃잎과 꽃받침이 5개씩이고 꽃잎이 둥근 편이며 끝이 약간 파여 있고

1줄기에 1~5개의 꽃이 달리고 꽃 바로 아래 잎이

다른 잎들보다 특별히 크게 보이는 경우도 있다.

참개별꽃은 큰개별꽃과 비슷한데 꽃밥의 색이 유난히 붉고

꽃줄기를 타고 한 줄로 난 털이 있어 큰개별꽃과 구분된다.

덩굴개별꽃은 꽃잎이 5장이고 꽃받침 조각이 꽃잎에 비해 아주 작은것이 특징.

잎은 마주나고 잎자루가 없으며 개별꽃에 비해 너비는 넓고 길이는 짧은 달걀모양.

꽃이 피고 나면 덩굴이 길게 뻗고 땅에 닿는 부분부터 뿌리가 내린다.

별꽃과 쇠별꽃은 밭두렁이나 길가에서 자라는데

5장의 꽃잎이 깊게 갈라져서 10장 처럼 보이는데

별꽃은 암술머리가 3개로 갈라지며 꽃이 5~6월에 비는데 비해

쇠별꽃은 암술머리가 5개로 갈라지며 꽃이 7~8월에 핀다.

생강나무 꽃이 달큼알싸하니 향기롭다.

간밤에 비가 내린 숲에 생강꽃 내음이 상쾌하다.

한 줌 따서 꽃차로 즐겨볼까나?

자꾸만 시선을 잡아끄는 숲속의 친구들

발걸음이 느려질 수밖에...

저마다 표정이 다르니 바쁠것 없는 우리에게는

딱히 서두를 이유가 없어 한결 여유롭게 눈을 맞추며

맘껏 즐겨보기로 했다.

진달래 화전을 부쳐서 

올봄 꽃놀이를 시작해볼까?

오리나무에도 새잎이 나고

암꽃 수꽃도 달리기 시작했다.

솔숲 사이로 햇살이 내려온다.

햇빛을 등진 꽃송이들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또 발길을 멈추고 즐기기로...

어느덧 건너편 능선이 한눈에 보인다.

다른 곳에 비해 유난히 이 코스에는 진달래가 많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얼마나 많은 발자취를 남겼을까 생각하니

이 길이 고맙고 애틋하다.

내가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기에...

까치박달나무 주름치마 같은 새잎이 나오고 있다.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울까.

여기저기 새잎이 돋아나기 시작하니

산은 점차 파스텔톤으로 물들어 가겠지.

키다리 진달래들이 맘껏 피어나고 있다.

버섯들이 깃들어 사는 나무

와~! 나무는 이렇게 끝까지 내어주는구나.

수줍은듯 피어나는 아기진달래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초록이 뚝뚝 떨어지는듯.

이 소나무는 살아남기 위해

이렇게 한 줄기로 안간힘을 쓰고 햇빛을 향해 뻗어 올라갔을까?

며칠 지나면 숲은 온통 연두빛으로 물들어 있을게다.

일 년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요맘때의 산을

올봄엔 실컷 누려보리라 마음 먹어본다.

예전에는 흙길이라서 겨울에는 아이젠을 하고서도

미끄럼을 타고 내려와야 했었지.

이 돌계단 없던 시절에 초딩의 딸랑구와

아이젠을 한 짝씩 나누어 차고서

이 길 이름을 'Surprise'라 부르기로 했었지.ㅎㅎ

한때 건강이 좋지 않았던 동무와 함께 산행을 하던 시절.

동무는 이곳 막바지 오르막길에서

더 이상 못간다며 이 나무에 등을 기대고 떼를 쓰던 곳이다.

계획에 없었던 산행이었던지라

대충 챙겨들고 온 우리의 소박한 점심이다.

커피와 빵 몇 조각과 사과 반 쪽씩.

직박구리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짝을 기다리는 것인지

우리의 점심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인지...

대범하게 등을 돌리고 가까이 아래 가지로 옮겨 앉는다.

서로 방해하지 말기로...

진달래꽃을 따 먹으려고?

놀랍게도 진달래꽃 주변에서 뭔가를 계속 먹고 있다.

이름모를 새들의 지저귐이 싱그러운 산 중턱에서

잠시 머물며 세상의 잡다한 소리들로 지친 

귀를 정화시키기에 안성맞춤인 숲속.

이제 다시 능선을 향하여 천천히 오른다.

이 능선 꼭대기까지

숨 한 번 헉헉대지 않고도 단숨에 오르내렸던 지난 날들.

혼자서도

때로는 가족과 함께

그리고 동무와도 함께 였고

아침에도

한낮의 더위를 피해 점심때도

해질 무렵에도 

이곳을 참 어지간히도 걸었었다.

가장 익숙한 코스라서 

오늘의 산행이 더 좋았던것 아닐까?

능선을 따라 혼자가 되어 걸어야 하는 좁다란 시누대숲길이 이어진다.

미당의 시에 나오는 시누대 파다거리는 소리를

들어보고 싶어서 걸음을 천천히...

정말 보기 좋은 것

겨울에 까치들을 부르기 위해
내가 놓아둔
감나무 붉은 홍시들 옆에
두메산골의 계집애 같은
시누대 나무들이
나란히 솟아올라
그 푸른 잎들을 파다거리고 있나니,
이것은 정말 보기 좋더라.
그래 나는
저승에 가서도
이 두가지가 함께 노는 것만큼은
꼭 보고 지내고 싶어라.

좁고 아랫쪽이 깎아지른 낭떠러지라서

천천히 조심조심 걸어야만 했었지.

에덴에서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반질반질한게 발길이 많이 이어진 모양이다.

한때 우리만의 은밀한 길이었는데...

못보던 사이에 올망졸망한 돌무더기들이 많아진게

아마 이 계곡을 찾는 이들이 늘어난듯 하다.

처음 이 계곡에 올때만 해도 사람들 만나기가 쉽지 않았었는데...

이곳에 돌탑을 쌓으며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

지나는 길손들이 하나씩 얹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계곡 주변엔 유난히 현호색이 많고

꽃 색깔도 다양하다.

현호색이 곧 피어날듯 꽃망울이 주렁주렁 차례로 매달려있다.

새들이 놀라서 푸드덕 날아가는 소리에 깜짝 놀라기 십상인

시누대 우거진 숲길.

키 보다 더 높게 자란 시누댓잎이 얼굴을 간지럽히곤 했다.

계곡의 물소리가 청량하다.

비 그치고 나면 이 계곡의 물이 불어나서

그 당시에는 다리가 없어서 건너기 어려웠었지.

불어난 물살에 건너지 못하고 서성이자

아내와 함께 반대편에서 올라오신 아저씨께서

등에 업히라시며 등을 내어주시는데

민망해서 어쩔줄 모르자 아주머니께서 괜찮으니 업히라고 하셨지만

끝내 오던 길을 되돌아서 다시 능선을 향해 올라갔다가

에덴으로 내려왔던 기억도 새롭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쉼터이기도 했던 이곳.

사시사철 언제나 물이 흘러내리는 소리가 

산속의 적막을 깨뜨린다.

이곳에서 매화 꽃송이를 띄워 차를 마시기도 했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었지.

폭포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시원스럽다.

아직 이른 봄인데도

폭포 아래에서는 젊은 남자 둘이서 

산행에 땀을 많이 흘렸는지 씻고 있는 모습이 보여서

아쉽지만 발길을 돌리기로 했다.

 

큰그늘사초가 누렇게 염색한 머리 사이로

초록초록한 머리카락이 돋아나는 가운데

왠 노란 꽃고무줄이...

이런 꽃단장은 처음 보았다.

치렁치렁 곱게 빗어내린 머리에

노오란 꽃댕기를 둘렀나?

 

ㅎㅎ이곳은 내가 아주 오래전부터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항상 발걸음을 멈추던 나무.

오늘도 변함없이 나무에게 내 마음을 담은 편지와 선물을 

넣어두고 왔다.

다음번 산행때까지 과연 그대로 있을까?

나 아닌 다른 누군가도 이곳을 숲에 보내는 편지를 담는

우체통으로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ㅎㅎ

나무야 나무야 나 기억하지?

ㅎㅎ올라가면서 그 누군가가 얼마나 황당했을끄나...

신발 밑창 떨어진 신발을 신고 올랐을 모습을 생각하니

웃음이 터져나왔다. 

에고...비상용으로 끈이라도 챙겨가지고 다니면

이렇게 낭패스런 일이 생기면 묶고 걸을 수 있었을텐데...

아침나절에 이곳을 지나노라면

햇살에 여울지는 시냇물이 마음을 사로잡곤 했었지.

언제나 변함없이 반겨주는 계곡길이다.

걸음이 빨라진다.

저 폭포 아래 언덕에 

내가 오늘 만나고자 하는 예쁜 아씨가 있거든.

예전에는 이곳이 온통 쫘악 깔려 초록 비단을 깔아놓은것 같았는데...

얼레지 군락지가 몇 년만에 이렇게 처참하게 되었다.

외롭게 홀로 핀 얼레지 한 송이.

그 얼굴을 보고 싶어하니

용감하게 폭포 아래로 내려가서

조심조심 다가가

수줍게 고개 숙인 얼레지를 만나는 동안에

남푠은 활짝 핀 얼레지꽃을 사진 찍는데 성공!

지금은 폭포쪽 벼랑끝에만 겨우 남은 얼레지.

그대로 두고 보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스런 개별꽃과 정답게 인사 나누고

숲을 빠져나오면서

우리 부지런히 다시 산행을 시작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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