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이야기

남도 기행 6

꿈낭구 2023. 2. 25. 18:01

여행 마지막 날 아침

돌아가는 길에 불일암을 가기로 했다.

우리는 오래전에 이미 다녀왔지만

못가본 언니들을 위해서.

순천 송광사의 작은 암자인 불일암 가는 길.

법정스님이 강원도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기시기 전 까지

이곳에 머무셨던 불일암 까지 가는 길이

무소유길이다. 

대숲길에 들어서면 새소리와 댓잎이 바람결에 흔들리는 소리와

스님의 글이 새겨진 이런 쉼터가 있어

사색하며 천천히 걷기에 정말 좋은 길이다.

나무들 사이로 아침 햇살이 배달되는 광경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처음 이곳에 당도했을 때

이 길 위에 대나무 빗자루로 쓸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

마음 조차 말갛게 씻겨져 내리는 듯한 느낌이

아직도 선명하다.

이 사립문에서 부터는 묵언을 해야한다.

번민하는 마음 조차 스르르 사라질것 같은 길이 이어지고

드디어 입구에 들어서면 

여름 목간용 작은 공간이 있고

정갈하게 가꾸어진 텃밭이 나타난다.

텃밭용이자 새들의 목욕탕이기도 한 작은 연못이 정겹다.

돌계단 옆의 커다란 나무

향목련이라고도 부른다는데

좋아하셨던 이 후박나무 아래 스님께서 잠들어 계신다.

이전에는 이런 팻말이 없었는데

아마도 널리 알려져서 방문객들이 많다보니

너무 소란스러워 이런게 필요하게 되었나보다.

발걸음도, 사진 찍는것도 신경쓰일 만큼 조심스러운 장소인데...

비록 종교는 다르지만 스님의 저서를 즐겨 읽었고

차와 음악과 책을 좋아하셨던

맑고 투명한 영혼의 스님은 내가 참 존경하던 분이셨다.

스님께서 자투리 나무로 직접 만드셨다던

빠삐용 의자가 아직도 이렇게 놓여있다.

 

'빠삐용이 절해고도에 갇힌 건 인생을 낭비한 죄였거든.

이 의자에 앉아 나도 인생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는거야.'

- 무소유 - 중에서

댓돌 대신 나무로 된 디딤돌 위에 놓인

털신과 흰고무신.

처마에서 떨어져 내리는 빗물이 

이곳으로 떨어져 내려 마당이 파이지 않도록 만든 이곳이

너무 정겹다.

비 내리는 어느날에 다시 이곳을 찾아

그 광경과 소리를 오래오래 바라보며 듣고 싶다.

이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모습도 아름답다.

돌계단을 오르면

스님께서 수행하셨던 불일암이다.

옆마당의 굴뚝과 낮은 담장이 정겹다.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에는

옆마당의 이 매화가 더 많이 피었었는데...

그래도 매향이 그윽해 참 반갑고 좋았다.

암자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 얼마나 예쁜지...

굴참나무로 만든 정겨운 탁자와

소박한 의자들이 풍경을 더해준다.

스님께서 이 공간을 참 좋아하셨다고 하던데

새들이 찾아와 쉬어가지 않았을까?

 바람에 실려 나는 맑은 풍경소리가 듣고 싶은데

바람 없이 잔잔한 고요가 아쉽다.

발걸음도 조심조심

이곳에 잠시 머물며 마음의 먼지들을 훌훌 날리며

다시 정갈한 대숲길을 걸어 내려간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넘치는 부 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 법정 스님의 '산에는 꽃이 피네' 중에서-

차밭과 저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가 너무나 아름답다.

잠시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다 보니

어디선가 꽃향기가...

매화가 어여쁘게 핀 모습에 또 발길을 멈추고

매향에 취해본다.

평일이라서 고즈넉한 산사에

물소리가 운치있게 들린다.

돌담도 정겹고

바람에 흔들리는 댓잎 소리가 오래오래 귓가에 맴돌던

참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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