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아이를 떠나 보내고
오늘 아침 참으로 오랜만에 둘만의 썰렁하고 쓸쓸한
아침식탁에 마주앉았습니다.
식탁의 빈 자리가 너무 커보인다기에
늘상 아이가 앉던 그 자리에 제가 마주하고 앉았지요.
오늘이 울신랑의 생일인데 행복한 하루 보내시라고
딸아이 한테서 문자가 왔노라며 웃는 얼굴이었지만
그 웃음이 퍽 쓸쓸해 보이는 표정이더라구여.
주일 오후에 하숙집에 도착해 짐을 정리해주고
아이와 함께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날 아침 아이는 학교로 우리부부는 근처의 마트로
몇 가지 더 챙겨줘야할 물품들이 있어서 함께 집을 나섰는데
자기가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에 내려가시라며
씩씩하게 작별을 고하고 뛰어 바람처럼 사라지더이다.
녀석... 차라리 이렇게 헤어지는게 좋을것 같았나봐요.
아이 좋아하는 쥬스도 사고 모과차도 사다 넣어두고
세탁기 사용법을 메모해두고 돌아와서 먹을 수 있도록
사과도 깎아서 담아놓고
이제 그만 돌아가자고 하는데도
아무래도 무얼 더 사다놓고 가는게 좋겠다면서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하다며 또 마트엘 가자네여.
알고 보니
아이에게 돌아오는거 보고 가겠다고 문자를 날렸던 모양입니다.
아이 돌아오는거 보고 가겠다면서 미적미적...
아빠 차는 있는데 방에 안 계셔 깜짝 놀랐다며
어디 계시냐는 아이의 전화를 마트에서 장보기 하던참에 받았습니다.
거 보라며 그냥 갔으면 얼마나 허전하고 섭섭했겠냐면서
날쌘 걸음으로 하숙집을 향해...ㅋㅋ
결국 네 시쯤에야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나섰는데
그냥 방에서 작별인사 하자며 나오지 말라더니
아이고...이냥반~!!
문을 닫으려다가 다시 고개를 들이밀고 아이를 한 번 더 보겠다고...
에효...결국 셋 모두 눈물을 보이지 않고 쿨하게 헤어졌지만
돌아오는 내내 한동안 차 안에는 정적이 흘렀지요.
마음도 그럴텐데 내려가는 길에 잠깐 들려 얼굴이라도 보자는 언니들의 요청에도
갈길이 멀다면서 고속도로로 그냥 들어서더라구여.
먼저 겪은 남지기 그 마음을 이해하는 언니에게서 문자가 날아왔어요.
시집 보내기 전에 예방주사 맞는거라는...
그러게요...한동안은 힘들겠지만 점점 익숙해지고 무디어지겠지요?
애써 쾌활모드로 분위기 전환을 해야했답니다.
엊저녁 낯선 곳에서 처음으로 혼자 지내게 될 아이 생각으로
잠이 쉬 오지 않았는데 오늘이 남푠생일이라서
냉동실에서 쇠고기 양지머리를 꺼내놓는다는게
아침에 보니 쇠고기 앞다리살이었어요.ㅎㅎ
그냥 미역국으로 끓였는데 맛은 좋았네요.
양념불고기도 엊저녁에 꺼내두었는데
둘이서만 먹게되니 그야말로 아주 적은 분량만 했어요.
식구 하나 줄었는데 이렇게 가벼워지다니요...
아이 먹일 욕심으로 평소에 더 많이 했던 모양입니다.ㅎㅎ
남으면 이젠 먹을 사람도 없고
그야말로 딱 한 접시 분량만 합니다.
이제부턴 1식3찬으로 식생활의 패턴을 바꾸기로 했답니다.
어제 늦게 돌아와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지만
남푠의 생일을 위해 특별한 상차림을 준비할 상황이 못되었던 터라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있는 반찬도 꺼내지 말라며
간소하게 1식3찬을 지키자네여.
샐러드라도 만들고 생선구이라도 하려고 했더니
한사코 말립니다.
아무래도 저녁에는 분위기 멋진 곳에서 기분전환 좀 시켜드려얄랑게뵤.ㅎㅎ
ㅎㅎㅎ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1식4찬을 허락한대나요? ㅋㅋ
아이가 있었음 생일축하 노래도 부르고
쫑알쫑알 분위기도 냈을텐데
하필...이런 날에 둘이서 쓸쓸한 생일아침을 맞게 되다니요.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크다지요?
둘이서 마주앉아 먼 훗날 우리의 노년의 모습을 그려보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