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공간

부부

꿈낭구 2011. 3. 8. 13:39

       


    부부

                                      -함민복-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시인이 10여 년 전 쓴 시다.

한 후배의 주례를 서 준 후

주례사를 시로 고친 것이다.

동고동락하는 부부의 애틋함이 살아있다.

늦장가를 가게 된 함씨가

앞으로 시에 나타난 부부의 역할을 하게 된다고-

그의 시 중에 좋아하는 시가 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긍정적인 밥>

                     -함민복-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어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도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소설가 김훈의 주례로 쉰 살 노총각 함민복 시인이

문단의 '비상한'관심을 끌었던 결혼식이 열렸다고.

신문에 소개된 글을 인용하자면

'오늘 결혼하는 함민복 시인은 고통, 고생, 가난, 외로움 속에서도

반짝이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시로써 표현해 온 시인입니다.

더 아름다운 것은

자신이 얼마나 중요하고 훌륭한 사람인지를 스스로 잘 모른다는 거지요.'

'한국어를 사용하는 자전거 레이서 겸 알피니스트 중

가장 아름다운 글을 쓰는 분'이라고 소개 받자마자

거침 없이 주례사를 시작한 김훈.

오랜 신문기자 생활을 해 '팩트'에 단련된 그는

신부가 5남5녀의 막내딸로 조카만 20명이라는 점 등

시시콜콜 '사실 관계'를 밝혀 웃음을 자아냈다고.

함씨가 국내선 비행기도 탄 적이 없어

신혼여행지로 제주도를 가며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게 된다는 점,

신부의 어머니가 충청북도로부터 몇 해 전 받은 '훌륭한 어머니 상'을

이날 가져오시라고 했더니 찾지 못해 못 가져온 사실 등도 소개했다.

압권은 함씨의 경제적 무능력을 밝힌 대목.

얼마 전 함씨가 운영하는 강화도 인삼가게의 실적을 물어보니

6개월 간 두 차례, 3만원 정도의 매상을 올렸을 뿐이라는 사연을 소개하며

'결혼은 사랑을 생활로 바꾸는 일이다. 앞으로 개선하겠다는 약조를 받아냈다'고 했단다.

90년대 중반 강화도로 훌쩍 건너간 함씨는

누구보다 어렵게, 그러나 끈질기게 시 쓰기에 매달려왔다.

생활비가 떨어지면 방 한가운데 빨랫줄에 걸린 시 한 편을 떼어 내

출판사로 보내 받은 몇 만원으로 버텼다는 등 타협을 거부하고 오롯이 시에 매진한 그의 일화는 끝이 없다.

시인 손택수씨는 '함민복씨는 천상병 이후 시인 하면 떠올리게 되는 전형적인 모습,

기인이면서 가난한 측면을 지니고 있다. 저 아름다운 영혼을 잘 보살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쉰 살 소년

함민복 시인

장가가던 날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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