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공간

아름다운 아침

꿈낭구 2011. 4. 7. 10:42

아름다운 아침

 

                                     -최승헌-

 

찬바람이 날을 세우는 이른 아침

방금 목욕을 마친 두 할머니가

힘겹게 목욕탕 문을 밀치며 나온다

두 분 중 연세가 조금 덜 들어보이는

할머니가 허리춤에서 휴대폰을 꺼내더니

가쁜 숨을 몰아쉬며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아마 남편에게 하는 듯

 

보소 오소

 

단 두 마디, 참 간단한 통화다

 

잠시 뒤 도착한 할아버지가

가랑잎처럼 가벼운 할머니를

타고 온 오토바이 뒤에 앉히면서 한마디 한다

 

어무이, 안 추운교? 목도리 꼭 하이소

 

그러더니 호주머니에서 노끈을 꺼내

할머니와 자신을 꽁꽁 묶는다

그 가녀린 노끈이 무슨 힘이 있겠냐마는

먼 옛날, 자신이 어머니의 뱃속에서

탯줄 하나로 생명의 줄을 연결하였듯이

지금은 힘없는 노끈 하나에

늙은 어머니와 늙은 아들이 연결된다

 

질긴 모자의 정이 소통되고 있는 아름다운 아침

 

* '보소 오소'와 '노끈'.

며느리인 듯한 할머니의 휴대전화 통화 두 마디 '보소 오소'는

어지러운 말들의 범람에 갇힌 우리를 단박 해방시킨다.

두 자 한 마디로 네 자 두 마디면 확 통해버리는 삶.

우리도 어떻게 좀 거두절미, 시원하게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

또 호주머니 속에 집어넣을 수 있을 정도의 가녀린 노끈으로

두 노인의 생명줄을 삼는다는 것은 어떤가.

늙은 아들이 가랑잎 된 어머니와 자기를 노끈으로 함께 묶는 행위는

옛 탯줄의 생명 은혜를 되갚는 모습을 닮았다.

투박하지만 훈훈하고,

묵은 정 깊은 세 할머니 할아버지 민중 만세.   (이진명·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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