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공간

당신을 위하여

꿈낭구 2011. 6. 2. 15:52

   

  


 당신을 위하여 

 

                                                              -오규원-

 

 

당신은 구체적인것을 원합니다

당신의 옷, 당신의 구두, 당신의 얼굴이 구체적이듯이

나의 말도 그와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당신의 눈을 아시는지요

이런 우화는 어떻습니까?


봄입니다

길이 끝난 곳에 층계

층계가 끝난 곳에 뜰

그 꿈의 뜰에

어제 저녁 천사들이 타고 온 마차가 한 대

그 옆에는 예쁜 천사의 발자죽이 몇 개 찍힌채 놓여 있습니다

꽃나무는 하루 종일 뜰을 위해 꽃씨를 만들고

바람은 안개를 쓰레질하고

구름이 놀러오도록 하늘을 말끔히 닦아 놓습니다

한낮이 되면

가끔 천사를 태우고 왔던 마부가

뜰 위에 휙휙 불어던지는 휘파람이 나타나기도 하고

심심한 꿈들은 휘파람과 함께

천사의 발자죽 옆에 자기의 발자죽을 찍어보기도 합니다


마을입니다

한 방에서는 책상 밑의 먼지가 조용히 숨을 죽이고

의자의 낡은 나사도 삐걱거리는 소리를 멈추고

서산으로 넘어가던 해도 한동안 노을속에 서서

오늘 이루어질 꿈의 색깔을 생각합니다

시간도 마을도 잠깐 걸음을 멈추고

거울도 옷걸이도 책상도 모두 바람에 등을 기댄채

가만히 귀를 열고......

늦은 봄

숲속에서는 어느새 봄이 이삿짐을 꾸리고 있습니다

천사가 몰고온 마차 곁에서

내년에 뿌릴 꽃씨와 아지랭이 그리고 보슬비를 가방에 넣고 난뒤

숲을 한 바퀴 돌며

꽃냄새와 새소리와 악수를 나누고

하느님께 보고할 장부를 옆구리에 끼고

손을 흔드는 나무와 풀과 너울꽃에게 인사를 던지며

봄이 마차에 오르고 있습니다

꿈의 대문이 반 쯤 열리고

마차가 빠져 나가고 있습니다

지구에서 천천히 봄이 떠나가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지구에서 봄이 천천히 떠나가고 있습니다

질문이 없으면 봄을 보내겠습니다

당신은 무엇인가 잃어버린게 있습니다

당신이 행복한 이유는

잃어버린 그것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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