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함민복-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시인이 10여 년 전 쓴 시다.
한 후배의 주례를 서 준 후
주례사를 시로 고친 것이다.
동고동락하는 부부의 애틋함이 살아있다.
늦장가를 가게 된 함씨가
앞으로 시에 나타난 부부의 역할을 하게 된다고-
그의 시 중에 좋아하는 시가 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긍정적인 밥>
-함민복-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어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도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소설가 김훈의 주례로 쉰 살 노총각 함민복 시인이
문단의 '비상한'관심을 끌었던 결혼식이 열렸다고.
신문에 소개된 글을 인용하자면
'오늘 결혼하는 함민복 시인은 고통, 고생, 가난, 외로움 속에서도
반짝이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시로써 표현해 온 시인입니다.
더 아름다운 것은
자신이 얼마나 중요하고 훌륭한 사람인지를 스스로 잘 모른다는 거지요.'
'한국어를 사용하는 자전거 레이서 겸 알피니스트 중
가장 아름다운 글을 쓰는 분'이라고 소개 받자마자
거침 없이 주례사를 시작한 김훈.
오랜 신문기자 생활을 해 '팩트'에 단련된 그는
신부가 5남5녀의 막내딸로 조카만 20명이라는 점 등
시시콜콜 '사실 관계'를 밝혀 웃음을 자아냈다고.
함씨가 국내선 비행기도 탄 적이 없어
신혼여행지로 제주도를 가며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게 된다는 점,
신부의 어머니가 충청북도로부터 몇 해 전 받은 '훌륭한 어머니 상'을
이날 가져오시라고 했더니 찾지 못해 못 가져온 사실 등도 소개했다.
압권은 함씨의 경제적 무능력을 밝힌 대목.
얼마 전 함씨가 운영하는 강화도 인삼가게의 실적을 물어보니
6개월 간 두 차례, 3만원 정도의 매상을 올렸을 뿐이라는 사연을 소개하며
'결혼은 사랑을 생활로 바꾸는 일이다. 앞으로 개선하겠다는 약조를 받아냈다'고 했단다.
90년대 중반 강화도로 훌쩍 건너간 함씨는
누구보다 어렵게, 그러나 끈질기게 시 쓰기에 매달려왔다.
생활비가 떨어지면 방 한가운데 빨랫줄에 걸린 시 한 편을 떼어 내
출판사로 보내 받은 몇 만원으로 버텼다는 등 타협을 거부하고 오롯이 시에 매진한 그의 일화는 끝이 없다.
시인 손택수씨는 '함민복씨는 천상병 이후 시인 하면 떠올리게 되는 전형적인 모습,
기인이면서 가난한 측면을 지니고 있다. 저 아름다운 영혼을 잘 보살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쉰 살 소년
함민복 시인
장가가던 날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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