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공간

담쟁이

꿈낭구 2012. 7. 23. 13:40

 

 

 

담쟁이

            -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벽을 넘으면 무엇이 있나.

아무것도 없을 수도, 더 높은 벽이 기다릴 수도 있을 것이다.

벽보다 더 숨 막히는 황야가 버티고 섰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기에는 잊지 못할 자유의 실감이 묻어 있을 것이다.

어떤 이들에게 그것은 넘기 위해 존재한다.

진정 갇히는 것은 넘으려고도 하지 않을 때이므로

담쟁이는 핏줄이 온몸으로 뻗어가듯 벽을 오르고 나아간다.

이 엄연한 사실에 한 모금의 갈증과 의지를 보태어 쓴 것이 이 시다.**

<이영광·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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