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공간

꽃에 대하여

꿈낭구 2011. 11. 16. 12:14

 

 

 

꽃에 대하여

 

                          - 배창환 -

 

열살 때 나는

너를 꺾어 들로 산으로

벌아 벌아 똥쳐라 부르면서

신이 났다.

그때 나는 어린 산적이었다.

 

내 나이 스물에

꽃밭에서 댕댕 터져오르는 너는

죽도록 슬프고 아름다웠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

 

마흔 고개 불혹이 되어서도

나는 아직 너를 모른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러면서 흩어지는 까아만 네 씨앗을 보고 있다.

 

나는 알 수 없다.

쉰이 되고 예순을 넘겨

천지 인간이 제대로 보일 때가 되면

나는 너를 어떻게 사랑하게 될까.

(......)

 

* 돌아보면 삶의 어느 순간에도 꽃 없던 때가 없다.

개구쟁이 시절, 혀끝에 시큼한 맛으로 다가온 건

뒷동산 진달래 꽃이었다.

첫사랑의 쓴맛은 소태나무 껍질에서 배웠다.

혼돈의 시대에 지친 젊은 영혼을 위로해준 노래 속에도 꽃이 있었다.

은은한 향기는 귀로 들어야 한다는 옛 선비들의 '문향(聞香)'도

매화나무가 가르쳤다.

푸른 절개의 소나무를 경배하게 된 건

불혹의 나이 넘긴 뒤였다.

한 순간도 나무와 꽃은 사람살이를 떠나지 않았다.

늦가을의 찬 바람 따라 맺힌 그의 까만 씨앗이

한없이 소중해지는 아침이다.

 

<고규홍·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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