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공간

참 우습다

꿈낭구 2011. 10. 29. 02:31

참 우습다

                                - 최승자 -

 

작년 어느 날

길거리에 버려진 신문지에서

내 나이가 56세라는 걸 알고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아파서

그냥 병과 놀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내 나이만 세고 있었나 보다

그동안은 나는 늘 사십대였다

 

참 우습다

내가 57세라니

나는 아직 아이처럼 팔랑거릴 수 있고

소녀처럼 포르르포르르 할 수 있는데

진짜 할머니 맹키로 흐르르흐르르 해야 한다니

 

 

 

"포르르"와 "흐르르" 사이 터진 거품이 있다.

덜그럭거리는 틀니가 있다.

"포르르"가 가지에 앉는 산새라면

"흐르르"는 기침과 기침 사이에서 끓는 가래

새는 날아갔고 거품은 터졌는데 또 다른 기침이 쏟아져서 틀니가 빠졌다.

시인은 늘 사십대였다.

그러나 신문은 이분을 56세라 적고는 그것마저 버렸다.

우습다고 말하는 동안, 겨우 연 하나 바꿨을 뿐인데,

또 한 해가 흘렀다.

올해가 2011년이니 시인은 육십.

그러나 이분의 시는 여전히 아프고 여전히 사십대다.

생각해보면 첫 시집이 나온 30년 전에도 그랬다.

서른에도 마흔이었고 육십에도 마흔이었다.

그리고 늘 아팠다.

나는 이분보다 열다섯 살 아래다.

그래서 이분의 시를 읽을 때마다 늘 스물다섯이 된다.     <권혁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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