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공간

한 호흡

꿈낭구 2011. 9. 6. 11:24

 

한 호흡

                             - 문태준 -

 

꽃이 피고 지는 그 사이를

한 호흡이라 부르자

제 몸을 울려 꽃을 피워내고

피어난 꽃은 한 번 더 울려

꽃잎을 떨어뜨려 버리는 그 사이를

한 호흡이라 부르자

꽃나무에게도 뻘처럼 펼쳐진 허파가 있어

썰물이 왔다가 가버리는 한 호흡

바람에 차르르 키를 한 번 흔들어 보이는 한 호흡

예순 갑자를 돌아나온 아버지처럼

그 홍역 같은 삶을 한 호흡이라 부르자.

 

* 숲 속 오솔길에 여린 줄기가 올라왔다.

 애처로울 만큼 가늘다.

 바람 없어도 제 무게를 못 이겨 하염없이 흔들린다.

 '금꿩의다리'

 예쁜 꽃은 그래서 무리 지어 자란다.

 서로를 의지해 피어나려는 심사인 게다.

 가지 끝에 밎힌 순한 보랏빛의 꽃봉오리가 홍역처럼 긴 숨을 들이쉰다.

 스치는 바람 따라 큰 숨 내쉬며 꽃잎을 활짝 펼친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노란 꽃술이 기지개를 켜고 숨을 멈춘다.

 참았던 숨을 뱉어내고 꽃이 시든다.

 고독하지만 격렬했던 한 호흡은 그렇게 완성된다.

 잦아든 꽃의 숨결이 가느다란 줄기 안으로 스며든다.

 꽃송이를 감돌던 침묵이 앙금 되어 가라앉는다.   <고규홍·나무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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