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공간

넙치의 시

꿈낭구 2011. 8. 14. 23:35

넙치의 시

                                     -김신용-

 

거대한 바다의 무게에 짓눌려 납작해져 버린,

이제 얕은 물에 담가놓아도 부풀어오를 줄 모르는 넙치여,

억눌리고 억눌려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 내장을

삼키고 삼켜, 그만 뒤통수까지 밀려난 눈으로

넙치여,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한의 무늬처럼

심해의 밑바닥에 뱃가죽을 붙인 채 엎드려 있었어도

기어코 하늘을 보려는구나, 하늘을 보려는구나.

 

 

* 제 이름은 넙치, 광어라 말해야 군침이 돌죠.

제게는 바다가 십자가예요.

몸이 유선형인 놈들은 요리조리 잘도 피해다니는데,

저는 그걸 다 떠안았어요.

바다가 어린 시절 달고나 기계처럼 저를 녹여서 뭉갰어요.

손님들은 저와 접시를 혼동하기도 하죠.

비어져 나온 내장을 삼켰더니

이번엔 눈이 왼쪽으로 밀려났어요.

그래도 제 안을 열면

순백의 살결을 만나실 거예요.

푸들푸들 떨며 제가 제공하는 순결이죠.

물속의 물속에,

다시 그 아래 땅속에 살지만

두 눈은 한사코 위를 향한답니다.

한 번도 저 위를 향한 간절함을 포기한 적 없어요.

바로 당신처럼.                      <권혁웅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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