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공간

침묵

꿈낭구 2011. 10. 7. 18:51

침묵

                           - 백무산 -

나무를 보고 말을 건네지 마라

바람을 만나거든 말을 붙이지 마라

산을 만나거든 중얼거려서도 안된다

물을 만나더라도 입다물고 있으라

그들이 먼저 속삭여올 때까지

 

이름 없는 들꽃에 이름을 붙이지 마라

조용한 풀밭을 이름 불러 깨우지 마라

이름 모를 나비에게 이름 달지 마라

그들이 먼저 네 이름을 부를 때까지

 

인간은

입이 달린 앞으로 말하고 싸운다

말없는 등으로 기대고 나눈다

 

*이름을 알려고 조급해하지 마라.

말 건네지 말고 그저 오래 바라보기만 하라.

나무 안에 담긴 생명이 경이로움을 느끼라고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그들이 스스로 제 이름을 가르쳐 줄 때를 기다리라고 보태셨다.

산을 만나면 중얼거리게 되고,

물을 만나면 입을 벌려 수다해진다.

이름 없는 들꽃의 이름을 알고 싶어 안달도 낸다.

'세상의 모든 꽃은 단 한 번만 핀다'고 했던 시인은 말한다.

입으로 말하는 사람의 앞은 공격적이다.

말도 안 하고, 보지도 않는 등 뒤는 언제나 무방비의 평화다.

지금은 작은 들꽃 송이 아래 납작 엎드려 하늘만 쳐다보고

청맹과니가 돼야 할 시간이다.        <고규홍·나무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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