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과 쓰레기
- 이대흠 -
날 지난 우유를 보며 머뭇거리는 어머니에게
버려부씨요! 나는 말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이의 과자를 모으면서
멤생이 갖다줘사 쓰겄다
갈치 살 좀 봐라, 갱아지 있으먼 잘 묵겄다
우유는 디아지 줬으먼 쓰것다마는
신 짐치들은 모태갖고 뙤작뙤작 지져사 쓰겄다
어머니의 말 사이사이 내가 했던 말은
버려부씨요!
단 한마디
아이가 남긴 밥과 식은 밥 한덩이를
미역국에 말아 후루룩 드시는 어머니
무다라 버려야,
이녁 식구가 묵던 것인디
아따 버려불제는,
하다가 문득......
그래서 나는
어미가 되지 못하는 것
* '멤생이'는 염소요, '디아지'는 돼지요,
'모태갖고'는 모아갖고요, '무다라'는 무엇 하러인데
'왜'의 느낌으로 쓰였을 것이다.
나는 이와 비슷하게 말하는 사람의 배 속에서 나와서,
이와 비슷하게 말하는 사람들 속에서 말을 배우고
몸과 마음을 길렀다.
무엇이든 대량으로 포획하거나 경작하고, 가공하고, 유통시키면서
도무지 귀한 것이 없어졌다.
혹은 사라지고, 혹은 바닥이 드러났다.
이제는 망하고 말 것이라는 위기의식만이 망하지 않게 할 수 있다는
희망마저 사라져 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어미가 되지 못하는 것".
우리가 숭배해온 편리와 탐욕이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서 받은
우리의 몸과 말과 마음을
종량제봉투에 쑤셔넣어 '버려분' 것일까?
우리는 결국 증폭된 우리의 욕망을 조율하는 데 실패하고 말 것인가? *
<장철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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