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공간

바이올린 켜는 여자

꿈낭구 2010. 12. 30. 15:47

바이올린 켜는 여자

                                -도종환-

바이올린 켜는 여자와 살고 싶다

자꾸만 거창해지는 쪽으로

끌려가는 생을 때려 엎어

한손에 들 수 있는 작고 단출한 짐 꾸려

그 여자 얇은 아래턱과 어깨 사이에

쏙 들어가는 악기가 되고 싶다

왼팔로 들 수 있을 만큼 가벼워진

내 몸의 현들을 그녀가 천천히 긋고 가

노래 한 곡 될 수 있다면

 

 

바이올린 소리의 발밑에

동전바구니로 있어도 좋겠다

거기 던져 주고 간 몇 잎의 지폐를 들고

뜨끈한 국물이 안경알을 뿌옇게 가리는

포장마차에 들러 후후 불어

밤의 온기를 나누어 마신 뒤

팔장을 끼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싶다

바이올린 켜는 여자와 살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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