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 켜는 여자
-도종환-
바이올린 켜는 여자와 살고 싶다
자꾸만 거창해지는 쪽으로
끌려가는 생을 때려 엎어
한손에 들 수 있는 작고 단출한 짐 꾸려
그 여자 얇은 아래턱과 어깨 사이에
쏙 들어가는 악기가 되고 싶다
왼팔로 들 수 있을 만큼 가벼워진
내 몸의 현들을 그녀가 천천히 긋고 가
노래 한 곡 될 수 있다면
바이올린 소리의 발밑에
동전바구니로 있어도 좋겠다
거기 던져 주고 간 몇 잎의 지폐를 들고
뜨끈한 국물이 안경알을 뿌옇게 가리는
포장마차에 들러 후후 불어
밤의 온기를 나누어 마신 뒤
팔장을 끼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싶다
바이올린 켜는 여자와 살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