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속초까지
-김광규-
서울에서 속초까지 장거리 운전을 할 때
그를 옆에 태운 채 계속해서
앞만 보고 달려간 것은 잘못이었다
틈틈이 눈을 돌려 북한강과 설악산을 배경으로
그를 바라보아야 했을 것을
침묵은 결코 미덕이 아닌데...
긴 세월 함께 살면서도 그와
많은 이야기 나누지 못한 것은 잘못이었다
얼굴을 마주 쳐다보거나
별다른 말 주고받을 필요도 없이
속속들이 서로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해를 곧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는데...
여름 바닷가에서 물귀신 장난치고
첫눈 내린 날 살금살금 다가가서
눈 한 줌 목덜미에 쑤셔넣고 깔깔대던
순간들이 많았어야 한다
하다못해 찌개맛이 너무 싱겁다고 음식 솜씨를 탓하고
월급이 적다고 구박이라도
서로 자주 했어야 한다
괜찮아 워낙 그런 거야 언제나
위안의 물기가 어린 눈웃음
밝은 목소리
부드러운 손길
포옹할 수 없는 기억속으로
이제는 모두 사라져버린것을.
-사랑하는 이의 얼굴이 증명사진처럼 떠오른다면 슬픈 일이다.
목소리만으로 기억된다면 역시 슬픈 일이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을 때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거나,
그가 노래하고 있을 때
소쩍새가 울었다고 말할 수 있다면 좋으리.
함께 지내는 사람의 얼굴과 목소리가 지루하게 느껴지거든
배경을 넣어볼 일이다.
새록새록 아름다울 테니.-
(윤제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