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리 주저리

유년의 추억- 밀 구어먹기

꿈낭구 2018. 5. 26. 16:59


지난 가을에 우리밀 영농조합 견학 갔다가

귀한 우리밀을 한 줌 얻어왔었다.

요즘 수입밀이 대세라서 우리밀 종자 구하기가 쉽지 않은 터라

아이들에게 우리밀을 보여주고

자라는 모습부터 봄날에 구워먹는 재미난 놀이까지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기에...

그래서 울시골집 한켠에 생전 처음으로 우리밀 종자를 늦가을에 시험삼아 심었었다.

이른 봄날 꽁꽁 언 땅에서 견뎌낸 밀이

파릇파릇 싹을 틔워 올라오는게 너무나 신기해서

얼마나 즐거웠던지...

사실 이삭이 올라오기 전까지는

보리인지 밀인지 조차 구별할줄 모르던 내가

시골집에 이 신기한 밀싹을 만나려고 무시로 드나들게 되얏다.

4월10일 이렇게 이쁘게 자라고 있었다.

봄의 따뜻한 햇살에 무럭무럭 자라더니

4월20일 이렇게 밀이삭이 생겨났다.

어찌나 이쁘고 신기하던지

감나무와 매실나무 아래 그늘진 곳에서도 이렇게 어여삐 자라는 밀이삭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올해 이곳에 그네를 만들어 두려던 계획까지 기꺼이 포기했다.

5월21일

이제 밀이삭 윗부분이 약간씩 노릇노릇한게

익어가는 모습이다.

어릴적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밀밭이 있었드랬다.

짓궂은 남자아이들이 뒤따라 오며

바람에 이리저리 사각대며 흔들리던 밀밭 속에

문둥이가 숨어 기다린다고 겁을 주곤 했었기에

그 밀밭 옆을 지날때믄 절로 잰걸음이 되었다가

나중에는 숨이 턱까지 몰아치게 뜀박질로 집을 향해 뛰어가곤 했던 생각이 난다.

그런가하면 언니들이랑 친구들이랑 이 밀 이삭을 이용해서

껌을 만들어 먹기도 했었다.

침을 뱉어가며 꼭꼭 씹으면 한참 지나 정말 껌처럼 차진 느낌의 밀껌이 되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믄 그게 바로 글루텐 성분이 아니었나 싶다.ㅎㅎ

쫀득헌 밀껌은 시컴스름헌게 아무래도 진짜 껌하고는 차이가 나서

크레용을 약간씩 넣고 열심히 침을 뱉어가믄서 씹다보믄

원하던 색깔의 껌과 비스무리헌 껌을 만들 수 있었지.

지금같음 도무지 있을 수 읎는 일일테지만

그시절 우리는 들이며 산을 돌아댕기며 온갖것을 다 뜯어먹고 뽑아먹고 캐먹고 자랐어도

아무 이상없이 여태 건강헌것을 보믄 신기하긴 신기하다.ㅋㅋ 

밀을 구워먹던 어린시절로 돌아가

윗부분이 노르스름헌 밀이삭을 조금 잘라서 가위로 뾰족한 가시같은 부분을 잘라내고

그런데...어디다 굽지?

새로 사온 화덕이 솥단지보다 커서 ㅎㅎ

쏘시개를 넣을 수 없게 바닥 가까이 닿넹.

몰래 구워서 깜짝선물을 헐라그랬는디

당췌 불을 붙이는 요것을 어뜨케 혀얄지 한참을 씨름을 허다가

포기허고

주방으로 들어가 프라이팬에 굽기로 했다.

히히...노릇노릇 밀이 구워지는 냄쉬가 솔솔 난다.

타지 않게 구워서 손바닥 안에 넣고 쓱쓱 비벼서

후~후 불어서 껍질을 날려보내는디 현기증이 난다.

결국 꾀를 내서 부채질을 해서 날려보내고

요만큼 얻었다.

말랑말랑허믄서 톡톡 터지는게 아주 재미졌다.

손바닥이 얼얼허도록 비벼서 겨우 얻은 요걸 들고

정원 손질에 여념이 없는 남푠에게로 다가가

써프라이즈~!!

ㅎㅎ맛들렸다.

감질나서 안 되긋다공

요만큼을 잘라왔다.

ㅋㅋ밖이 어둠이 내리는줄도 모르고

밀이삭 굽느라 단재미가 났다.

도시에서 자란 남푠은 이런 추억이 있을리 만무허니

불 피워서 이삭을 꼬실르는 실력은 뻐언~하지 않긋능가...

이렇게 어둠이 내리도록 까맣게 꼬실르다가

결국 요만큼을 만들어서

둘이 킬킬대믄서 캑캑거림서 먹노라니 옛추억이 새록새록~~!

우리의 풋풋했던 시절

둘만의 사진으로는 이게 처음이다.

교회에서 야외예배를 갔었드랬는디

근처의 밀밭에서 사진을 찍었었다.

둘이서 사진을 찍는게 어색하고 민망해서 어쩔줄 몰라했던 이야기를 하며

우리의 역사가 밀밭에서 시작헌거라고...ㅎㅎㅎ

바람에 흔들리믄 밀밭은 어찌나 아름다운지

노랗게 익을때까지 실컷 즐감하기로 했다.

그런데...요즘 고냥이가 이 밀밭을 놀이터로 삼는 모양인지

군데군데 밀밭을 망쳐놓고 있다.

고얀넘 같으니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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