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리 주저리

김주부의 수고로운 일상

꿈낭구 2019. 10. 7. 15:41

 

 

지난 8월 말 일주일 동안의 제주도 여행.

줄곧 비가 내려 계획했던 올레길 걷기는 안타깝게도 수포로 돌아갔지요.

마지막날 처음으로 맑은 쾌청한 날씨라서

벼르고 벼르던 장생의 숲길을 걸어보기로 숙소를 나섰네요.

계속된 폭우로 인해 통제를 하여

우리의 계획은 다시 묻히게 되어

휴양림에서 시간을 보내던중

바로 발밑에서 내가 젤루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뱀을 만나는 불상사가...

너무 놀라 비명을 지르며 있는 힘을 다해 뒤돌아서 뛰다가

 연골파열로 결국 수술까지 하게 되었어요.

여행 떠나며 커다란 그릇들을 총동원해서 화분들을 물에 담궈두고 갔었는데

여태껏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베란다의 식물들을 보니

미안하기도 하고 속도 상하고...답답하네요.

졸지에 갑작스런 주부노릇을 하게 된 남푠은

아직 여기까지 손길이 미치기에는 역부족인지라

계속 이렇게 대야에 담긴채 물만 보충해주는 형편입니다.

 

세탁을 한다고 섬유유연제를 얼마나 많이 넣었는지

옷에서 섬유유연제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결국...다시 헹굼을 하게 되고...

세탁물을 걷어서 접는데도 어마어마헌 시간이 걸립니다.ㅠㅠ

병원의 침상과 달리 쇼파에 눕거나 앉았다가 일어서려면

얼마나 힘이 드는지 진땀이 나고

화장실 한 번 가는데도 목발짚고 가서 나오기까지

또 얼마나 끙끙 앓는 소리로 기합을 넣어야 하는지요.

손으로 짚고 일어서거나 목발에 의지하다보니 겨드랑이는 물론

손목이며 어깨며 등이며 안 아픈데가 없이

온몸이 다 아픕니다.

게다가 아무래도 수술한 오른쪽을 못쓰니 한 쪽으로 쏠려

멀쩡했던 왼쪽까지 체중이 실려 아프다고 아우성이네요.ㅠㅠㅠ

앉고 일어서기 편하게 만들어준다며

거실의 쇼파위에 카페트를 접어서 높이를 올려주었는데

다행히 쇼파가 수입산이라 높고 깊어서 이렇게 만들어주니

한결 편안해져서 요즘 전용 간이침대가 되었어요.

앉아서 빨래 정도는 내가 갤 수 있다고 하는데도

굳이 주방 식탁위에서 하는 남푠을 바라보니

미안함과 서글픔과 복잡한 마음이 듭니다. 

내가 바라보는줄도 모르고 정말 열심히 요리조리 타올을 똑같이 접어보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니 웃음까지...

 

끼니때마다 무얼 해줘야 잘 먹을까 고심하는 남푠 때문에도

입맛이 없지만 억지로라도 먹고 지냅니다.

거실로 배달되는 우리의 밥상에는

남푠표 국적불명의 찌개와

야심작으로 만들었다는 고추조림에

시어고부라진 고들빼기김치와 오이장아찌, 김자반.

수저와 젓가락의 위치도 거꾸로인 모습이며

어려운 잡곡밥에다 연자육과 땅콩이며 콩까지 워디서 찾아서 넣고 지었는지...

그냥 울컥해지더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다음 끼니를 준비하기 위해

도마 앞에 선 남푠의 모습.

그 집중모드가 왜케 웃음이 나는지요.

 

다듬고 씻고...

주부들이 후다닥 해내는 일도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보기에도 딱합니다.

재료도 조리도구도 양념도 못찾아서 뒨정뒨정.

그래도 큰소리 빵빵 칩니다요.

날이갈수록 실력이 늘어가니 두고 보라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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