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꽃을 든 남자

꿈낭구 2023. 11. 20. 20:28

오늘은 그동안 미루고 미뤄왔던 건강검진을 위해

출근 시간을 피해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서기로 했다.

졸지에 다 피워보지도 못하고

엊그제 첫눈에 고꾸라진 장미꽃을 보며 아쉬워했더니

어제 햇살에 언제 눈이 왔었느냐는 듯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

피우다 만 장미를 남푠이 잘라서 들고 들어왔다.

ㅎㅎ꽃을 든 남자의 마음을 가상히 여겨

즉시로 이렇게 꽂아 거실 탁자에 두었다.

 봄부터 피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었던 장미를

이렇게나마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으니 좋다.

건강검진 앞두고 불안하고 심란스러운 마음에

어젯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올 한 해는 내게는 너무나 힘든 시간들이었다.

이곳으로 이사 오면서 무리가 되었던지

어깨가 아프기 시작하여 통증으로 너무 아파서

병원순례를 하다가 결국 수술을...

눈물겨운 재활과정을 견뎌내고 이제는 살만하다 하던 지난 초가을

아이 좋아하는 초록콩을 뽑아다 쪄 주려다

데크 위에서 그만 발을 헛디뎌 넘어졌는데

별이 번쩍하도록 극심한 통증으로 이렇게나 오래 

다시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내게 되었으니......

넘어지면서 어깨를 보호하기 위해 팔꿈치로 충격을 막아내려던 것이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팔꿈치뼈의 통증이 어깨 쪽으로 올라와

그동안의 힘들었던 시간과 노력이 물거품이 될 줄이야.

올해는 내 인생의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한 해였다.

독한 약 때문에 몸이 많이 망가진 상태여서

오늘의 건강검진이 두렵고 떨릴 수밖에...

그런데 위내시경 결과는 너무나 좋다시며 아주 깨끗하고 이쁘다며

의사 선생님께서 소상히 설명해 주셨다.

한의원 치료까지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거실로 들어서니 장미 향기가 나를 반긴다.

아~~ 오늘은 감사로 충만한 하루였다.

남푠을 위해 호박죽을 쑤었다.

빈 속에 부드러운 죽이 좋을 것 같아서...

서리를 맞고도 이렇게 꽃을 피운 장미가 아까워서

주방의 식탁 옆 창가에 두고 즐기기로 했다.

장미의 월동을 위해 키를 낮추어 전지를 해줘야 한다고

수목원의 장미원 관리하시는 분께서 말씀하셨다며

이렇게 아직 피어보지도 못한 꽃송이들을

들고 집안으로 들어온 꽃을 든 남자. ㅎㅎㅎㅎㅎ

넘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자꾸만 눈길이 간다.

아내의 양력 생일이라면서 꽃을 내미는 모습에

빵~ 터졌다.

결혼 후 시어머님 생신과 같은 나는

늘 어머님 생신을 챙겨드리느라 종일 시댁에서 동당거려야 했는데

지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내게

어머님 살아계신 동안에는

내 생일을 양력으로 앞당겨 축하해주곤 했었다.

그런데 어릴 적부터 내 생일은 늘 한겨울이었던지라

양력으로 기념하는 생일은 도무지 어색하기만 했었다.

어머님 돌아가시고 다시 내 생일을 찾게 되었는데

올해는 음력 생일이 없고 내년이니

이렇게라도 꽃을 건네고 싶었단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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