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눈물겨운 결혼기념선물...땅콩

꿈낭구 2013. 9. 27. 16:13

 

 

요것이가 뭔종 아시긋써라?

그류...바로 땅콩여라.

유기농 햇땅콩...

지가 요것을 수확허고는 고만...

 

지난 주말부터 땅콩을 수확허얀다고 지주냥반께오서 기별이 왔드랬는디

좀체로 시간을 낼 수 있어야쥬.

애써 농사지은 이 땅콩을 한 두럭 선뜻 내어주시며

갱시기동무네허고 둘이 사이좋게 나눠 묵으랬거덩요.

아이공...이게 왠떡이래영.

맴은 굴뚝인디 당췌 시간을 낼 수 없어서뤼

미처 못갔등만 갱시기동무네는 절반을 캐가고

우리몫이 덩그마니 남었드랑게여.

비가 와서 더 놔둠 싹이난단디 아모리 궁리를 혀봐두

적당헌 날이 읎어라잉.

결혼기념일날 저녁에 밭으로 땅콩캐러 갈 순 읎잖은게뵤잉?

남푠 출근허자마자 마침 날도 꾸리꾸리혀서

ㅎㅎㅎ '나가 잽싸게 가서 얼렁 캐와서 깜짝놀래켜 줘야긋당...'

 

땅콩캐러 주말농장에 갔더니만

워매...왠 까치들이 땅콩밭에서 우~~허니 꽁지를 펴고 날어올라요.

고것들이 땅콩을 죄다 까먹고 있더랑게여.

땅콩을 힘껏 잡어땡겨서 뽑았더니만

땅콩 한 알에서 주렁주렁 많이도 달렸더이다.

뽑기는 뽑았는디 주절주절 달린 땅콩을 따는기 여간 품이 드는게 아닙디당.

꾸물거리던 하늘엔 어느새 햇살이 쏟아져내리는디

대책읎이 썬크림도 안 바르고 나선 이몸 완죤 지대루 꼬실를 태세루다...

 

뽑고난 자리를 호미로 쑤석거렸등만

에고머니낭...클날뿐혔쓰요.

여그도 땅콩, 저그도 땅콩...

이스락줍는 재미에 허리가 꼬부라지게 흠뻑 빠져서리...

장갑도 안 끼고 맨손으루다...

 

 

주말농장 으쓱헌 수돗가에서 흙투성이 땅콩을 씻느라

월매나 다리가 발발 떨리던지요...

헛기침도 모자라 쉴새읎이 발을 굴러감시롱

행여라도 긴짐승 출몰헐까 무서워서 말여라.

한 대야는 씻어서 지주냥반네 비닐하우스여다 얌잔허니 널어서 말릴셈으로 두고

남지기는 베란다에 신문지를 깔고 말리는 중이야용.

 

 

집에 돌아옹게로 오후 두 시가 되얏지뭐여유.

 

 

캐자마자 바로 씻어서 찌믄 젤루 맛나당게여.

전자렌지에 쪘쓰요.

우와~~ 진짜 보람찬 수확이 아닌게뵤잉?

 

 

요 땅콩을 캐는동안 자그만치 몇 방이나 모기헌티 헌혈을 허고

굼뱅인지 뭣인지 왠 꿈틀거리는 벌레가 워찌나 자꼬 나오던지

아고고...혼자 소스라치게 놀라서 호미를 내던지고 도망치기를 여러 번...

참말로 그런 우여곡절 끝에 얻어낸 땅콩인지라

비록 생김새는 요로코롬 못생겼어도 여간 뿌듯헌게 아녔당게여.

 

 

크기도 제각각 생김새도 제각각...ㅎㅎㅎ

완죤 유기농 땅콩의 포스란 바로 요런것이랑게여.

 

울신랑 결혼기념일 이벤또를 허긋다공

눈썹을 휘날림서 퇴근을 혔는디

땅콩을 캐고 극심헌 후유증으로 아고고고...를 연발험서

끙끙 앓아눕고야 만 저를 보더니만 아연실색.

누가 혼자 가서 그렇게 캐라고 혔냐고...

그랴서 결혼기념 선물로 자기 대신 땅콩캐는 수고를 대신혔다고 혔등만

자긴 도쥐~~ 눈물겨워서 그 선물 접수 못허긋대여.ㅋㅋ

 

멋진 분위기나는 곳에서 저녁을 사줄란디

누워서 눈도 못뜨고 낑낑거리는 저를 일으켜 겨우 일어났구만

손끝이 너무 아프고 어설픈 호미질에 어깨며 등꺼정

쇳뎅이를 짊어진듯 욱씬거림서 아픈디

무신 분위기는 분위기다요잉?

 

실은 주말농장서 돌아오는길에 안심을 사다 스테이크를 헐 계획였는디

땅콩사업에 너무 기진맥진혀서 고만 고꾸라져서

백화점가서 멋진 선물 마련헐 야무진 계획꺼정도 차질이 생겨뿐졌잖우.

울신랑의 케익도 아슈구룸케익도 도리도리~~!

뭣이든 말만 허믄 들어주긋다고 파격적인 선심을 쓰는디

도통 아무것도 관심이 읎었구먼유.

겨우 울동네 꾀기집서 아무맛도 모르고 저녁을 해결허고는

집에 돌아와 기냥~뻗어뿐졌당게여.

비몽사몽간에 어디선가 들려오는 귀에 익은 목소리...

울신랑~눈물겨운 결혼기념선물 땅콩을 혼자서 까묵음서...

"이게 아닌디...이게 아녔는디..."

 

두고두고 놀림받게 역사적인 사건을 맹글었지뭐유.

ㅋㅋㅋ 시방꺼정도 손가락도 아프고

손이 쥐얌쥐얌도 안 된당게여.

급기야는 낼 저녁 편백나무 찜질방으로 지를 끌고가긋당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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