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시골집

단수수와 수박

꿈낭구 2019. 8. 17. 13:04


단수수가 익어가는 계절

시원스레 뻗어올라 하늘바라기하는 단수수를 올려다보며

군침을 삼켜요.ㅎㅎ

참고 또 참았다가

담주 제주도 여행갈때 가져가서

울언니랑 항꼬 나눠묵을라구요.

어린시절 추억허믄서 단물을 삼키며 웜청 잼나게 보낼테야요.

울 여름별궁 텃밭에 선물처럼 자리하고 자라는 수박한테

의자를 내어줬습니당.

내 좋아허는 시인의 시가 떠올라서요.

향기로운 말린 허브를 폭신허니 깔아주고

남푠과 함께 오래전 아주 오래 전에

신문에서 제가 스크랩해둔 글을 함께 나눴습니다.

의자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라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

의자 몇 개 내 놓는 거여

 

 

** 공부가 곧 의자 싸움이란 걸 깨닫지 못한 채로 학교,

열심히 다녔습니다.

오밤중까지 그렇게 의자와 한 몸이다가

거참 내 이러려고 의자인가,

회의에 빠진 나날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궁둥이를 대고 걸터앉을 수 있는 기능 정도의 의자가 궁금했다면

선생님께 묻지도 않았을 겁니다.

헛소리 집어치우고 공부나 해라.

쳇, 선생님도 몰랐으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역시, 우리네 엄마는 달랐습니다.

김장 배추에 소금을 뿌리면서도 의자야,

대중목욕탕에 때 밀러 들어가서도 의자야,

시장에서 나물 파는 할머니와 수다 떨 준비를 하면서도 의자야,

의자 바로 알기 수업을 시켜줬으니까요.

참 안 그러려고 하는데

매일매일 밉고 미운 사람들이

오락실 게임기 속 두더지처럼 뿅뿅 튀어나옵니다.

싫다 싫구나 싶을 때마다 나는 아뿔사, 하고 의자 생각을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나를 의자라고 생각하는 이가 단 하나라도 있을까.

없다면 조용히 고요히 입 닫고 할 일이나 할 일입니다. **

                                            <김민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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