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리 주저리

오늘 10년 지기와 작별했어요.

꿈낭구 2019. 11. 20. 17:19


남푠의 퇴직과 발을 맞추어

저는 그동안의 모든 활동을 접기로 결단을 했지요.

퇴직후 혼자있는 시간이 마음쓰여서요.

안 그래도 참 삼식이니 젖은 낙엽이니 뭐니

참으로 입에 담기 민망한 우스개 소리들이 난무한 세상에

평생을 가족을 위해 애쓴 가장의 휴식을

왜 그리도 못봐줘서 안달일까요?

저는 기꺼이 남푠과 함께하기로 결단을 하고

이미 퇴직 전부터 나름 준비를 했더랍니다.


 책임있는 자리에서 얼마나 무겁고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퇴직후 당분간은 아무것에도 메이지 않을거라며

시간에도 배움에도 구애받지 않고 한동안 실컷 놀고 싶다고...

자유롭고 싶다는 남푠을

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답니다.

그래서 그동안 함께 줄기차게 여행도 다니고 산행도 하고

함께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누리며 제2의 신혼을 즐기게 되었지요.

그러다보니 늘상 함께라서 제 차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서있는 날이 많아져서

팔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남푠은 있다가 없으면 불편할거라며 한사코 그냥 두라고 하지만

가만히 세워만 둬도 자동차보험에 자동차세까지 꼬박꼬박...

낭비 같아서 결단을 내렸답니다.

더구나 지난 여름 수술을 해서 운전을 못한지가 벌써 두 달이 넘었거든요.

이 에쎔이는 저의 두 번째 동반자여라.

면허 취득해서 제가 처음에 마련한 차는 코발트색 아벨라였지요.

첫 주행날 하필 비가 내리고

뒷자리에 딸랑구를 태우고 유치원에 데려다주러 가는데

산업도로의 커다란 트럭들이 얼마나 위협적이던지

입이 마르고 속이 타들어가던 그때를 잊을 수가 없어요.

그렇게 울딸랑구 초딩때꺼징 타다가 요 에쎔이로 바꿀때

나의 첫사랑 아벨라를 데려가는데 주차장에서 하염없이 꽁무니를 바라보며

아쉬운 마음에 우두커니가 되었드랬쥬.

요 에쎔이가 두 번째 애마가 되어 참 많이도 함께했는데

정든 에쎔이가 이제 내게서 막상 떠나간다니

것도 해외로 팔려간다니 마음이 참 복잡해지더라구요.

제 첫 차 아벨라를 보낼때도

남푠의 두 번째 차 아방이를 떠나 보낼때도

아쉬움에 섭섭헌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드랬는데...

본인이 직접 주민센터에 가서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아 보내얀다기에

두 달 반 만에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다리 아픈데 위험하지 않겠냐고

괜찮겠냐고...남푠은 염려스러운 눈빛이었지만

마지막이니 제가 직접 운전하고 싶었거든요.

신속하게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어

차를 가져가기 위해 직원이 오고

저는 차마 떠나가는 나의 싸랑 에쎔이를 볼 수가 없어서

남푠을 대신 내려보냈는데

차가 천천히 제게서 떠나가고 있네요.

이럴줄 몰랐어요.

왜 이다지도 눈물이 핑 돌까요?

뒷베란다 창을 통해서 내려다 보는데

마음으로만 손을 흔들어줬어요.

점점 제게서 멀어져가는 에쎔이를 도로 붙잡고 싶어집니다.

이럴줄 몰랐는데...

멀어져가는 차를 바라보면서 그만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함께했던 즐거웠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무사고 10년 이라는 긴 세월을 함께했던 친구와

이렇게 속절없이 헤어지게 되다니요...

이제부터는 우리의 삶을 보다 간소하게 살아보자며

안 그래도 하나 둘 정리를 하던 중이었는데...

가끔 번갈아가며 여름별궁에 갈때 차를 가지고 가곤 했는데

막상 떠나보내려니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하고 참 그렇습디다.

더 멀어져만 가는 꽁무니를 보다가

 딸랑구에게 톡을 날렸습니다.

'울딸랑구 요담에 성공해서 좋은 차로 바꾸게 되믄

그 귀엽고 깜찍헌 모닝은 내꼬다잉?'


딸랑구 처음 면허 취득하고 깜찍한 모닝으로 첫출근을 했드랬지요.

초보운전이라서 늘 마음 쓰이고 조마조마했었는데

이젠 그 쬐끄만 트렁크에 접이식 자전거를 싣고 다니며

주말을 즐기고 있어요.

아마 아이도 언젠가 아이의 첫 차와 작별을 하게 되면

이 마음을 이해하게 될테지요?


이젠 남푠의 차에 익숙해져얄텐데

히히...

다 정리하고 한 달에 한 번 제가 원예치료 수업하러 가는 날에는

기꺼이 기사가 되어주긋당만유.


낯선 나라에서 좋은 주인을 만나 사랑 듬뿍 받을거라 믿어요.

에쎔이가 보기보다 정말 차가 잘 나가고 좋았거덩요.

차를 보러 오셨던 분도 실내도 아주 깨끗하고

엔진도 굿굿이라며 아주 흡족해 하셨다니까요.


헛헛한 제 마음을 읽었던지

남푠은 우리 삶의 더께를 한 겹 벗은거라며 토닥여줍디당.

그렇게도 팔지 말라믄서 반대하던 때는 언제공...

'나 어쪼믄 자기 차 뺏을지도 몰러요.'

"아 그렇담사 월매든지 환영이징. 나 차 바꿔줄라고?"

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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