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리 주저리

비 오는 날의 낭만유?

꿈낭구 2011. 9. 6. 16:16

 

 

얼마전 혼자서 네 시간이 넘는 능선을 종주하고 체중계에 올라서서

흡족헌 미소를 날리던 울신랑이

요새 틈만나믄 산에 가자공...

허지만 요즘 햇볕이 쫌 따가워요잉?

해가 좀 기울면 가자고 꼬드겨서 지난 주일 오후 해거름판에 집을 나섰지요.

그런데 그날 새벽녘에 모기소동이 나서 잠을 설쳐

어차피 잠도 안 오고 허는지라 실수로 날려버린 과제를 헌다고

꼼쀼따 앞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등만 수면부족인지

산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자꾸만 눈꺼풀이 힘을 잃고서리...

졸린다고 찡찡댔등마는 오늘은 쬐끔만 갔다가 주말농장에 가서 영농을 하자고 하더라구여.

 

주차장에서부터 걸으면 너무 조금 걷게돼 별 도움이 안 된다며

굳이 동네 입구에도 한참 못미처 여기 다리 아래에다 주차를 허고

길 아래 개울가에 핀 꽃들도 귀경허고

담장을 훌쩍 넘은 감나무, 대추나무를 보며 군침을 삼켜가며

세월아~ 네월아~!!

그러다가 주차장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집니당...

해거름판이라고 모자도 차 안에 내던지고 왔구마는.

이런~ 낭패로고~~!!

지난번 대책없이 산에 들었다가 왕소나기로 물에 빠진 새앙쥐가 됐던지라

주머니에 위생팩 한 장 찔러넣고 온 게 유일헌 우리의 비상대책인디

급헌김에 주차장의 정자에서 잠시 비를 피하기로 했지요.

산에 본격적으로 오르기도 전에 비를 만났으니

이거 김이 팍~~셌쟈녀유? ㅋㅋ

 

산바람이 산들산들 불고...

 정자 처마끝에서 빗방울이 주루룩 떨어지는 모습을 구경허는 재미도 쏠쏠혔구요.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들 귀경이 특히나 잼나등구만요.ㅎㅎㅎ

구구각색으로 나름나름 비를 피해보려고

수건을 뒤집어 쓴 사람.

비에 쫄딱 젖어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서

곧 산부인과로 직행혀얄것 같은 만삭의(?) 배를 고스란히 드러낸 민망헌 아자씨들.

그런가허믄 돗자리를 펴서 삼삼오오 떼를 지어 머리에 둘러쓰고 오는 사람들...

그렇게 하염없이 앉아서 비 그치기를 기다리는데

사람들이 하나 둘 다 빠져 나가고

덩그마니 우리들만 남게 생겼씨요...

그랴서...우리도 뭔가 대책을 세워얀디...

비닐주머니에 카메라와 휴대폰을 넣어 야무지게 묶고서리

등산용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빠른 걸음으로 차를 세워둔곳을 향하야~~

아니...그란디 비가 더 거세게 쏟아집니다.

기다렸다는듯이...

동네 울타리 아래에 버려진 우산이 눈에 들어왔지요.

그걸 둘이서 둘러쓰고 ㅋㅋㅋ

이쪽 저쪽이 사정없이 찌그러진 우산이라서

우리 두 사람을 쏟아지는 빗줄기로부터 막아주기에는 역부족인지라

본의아니게 닭살모드루다가 둘이서 하나이되어 발을 맞추며 걸었다우.

ㅎㅎㅎ 이 우산 이래봬두 아주 요긴허게 쓰였기에

이 다리 기둥 아래에 살며시 세워두고 왔지요.

옛날에는 요런 정도의 우산쯤은 길거리 워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었는디 말이죵.

바람부는 날이면 뒤집어지기 일쑤인 비닐우산이며

기름먹인 종이우산도 있었다는것이며

우산 살이 부러지거나 꼭지가 달아나고 없는걸 고쳐주던 가게가 있었다는 사실을

요새 아그덜이 워찌 알것이요잉~!

패션우산이다 비옷이다 장화랑 요즘 넘쳐나는 우양산까지...

참말루 학교 다닐적 비오는 날 아침이면

형제자매끼리 우산때문에 신경전을 벌이던 시절도 있었는디 말여라.

지금...우리집 신발장 안에도

우리 가족수의 네 배나 되는 우산이 있구먼요.

워디 그뿐인가여?

자동차 안에는 또 임금님 우산(?)을 비롯하야 영농용 해가림 우산까지...

에구구...이제는 대기오염으로 비도 맘놓고 맞을 수 없는 시상이 되얏으니

비를 맞는 낭만도 잃어뿐졌구만요.

고작 이런 부서진 우산을 뒤집어 쓰고 함께 킬킬대며 걷는것도

비 오는 날의 낭만이라고 헐 수 있지 않을랑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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