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공간 75

그대 앞에 봄이 있다

그대 앞에 봄이 있다 - 김종해 -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낮게 밀물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 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그런 너

그런 너 / 나태주 세상 어디에도 없는 너를 사랑한다. 거리에도 없고 집에도 없고 커피 잔 앞이나 가로수 밑에도 없는 너를 내가 사랑한다. 지금 너는 어디에 있는 걸까 네 모습 속에 잠시 있고 네 마음속에 잠시 네가 쉬었다 갈 뿐 더 많은 너는 이미 나의 마음속으로 이사 와서 살고 있는 너! 그런 너를 내가 사랑한다 너한테도. 없는 너를 사랑한다.

백련꽃 사설 -윤금초-

백련꽃 사설 - 윤금초 - 얕은 바람에도 연잎은 코끼리 귀 펄럭이제. 연화차 자셔 보셨소? 요걸 보믄 참 기가 맥혀. 너른 접시에 연꽃이 쫙 펴 있제. 마실 땐 씨방에 뜨거운 물 자꾸 끼얹는 거여. 초파일 절에 가서 불상에 물 끼얹대끼. 하나 시켜놓고 열 명도 마시고 그래. 그 향이 엄청나니께. 본디 홍련허구는 거시기가 달라도 워느니 달러. 백련 잎은 묵어도 홍련 잎은 못 묵거든. 연근은 둘 다 묵지마는 맛이 영판 틀려. 떫고 단면이 눌눌한것이 홍련이제. 백련 뿌리는 사각사각하고 단면도 하얘. 백련은, 진창에 발 묻고설랑 학의 날갤 펼치제. * 강신재의 패러디* 윤금초 선생님. 이 사설시조 처음 읽어본 날 저 연화차 마시러 갔어예. 그 향이 엄청나다고 해서 저도 동창들 우르르 몰고 가서 달랑 하나 시켰어..

당신이 고마운 백 가지 이유

[당신이 고마운 백 가지 이유] 당신이 눈물 나게 고마운 이유를? 난 앉은 자리에서 백 가지도 댈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을? 한 번에 다 이야기해 버리는 건 별로 재미가 없으니까. 두고두고 꼭 한 가지씩만? 이야기해 주기로 한다. 백 가지 중의 첫 번째 이유는, 당신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살아있어 나를 만나고? 내 영혼을 만나고 내 눈물을 만나준 것에 대해 나를 기쁘게 하고? 슬프게 한 것에 대해 과거를 추억하고? 미래를 약속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한다. 언젠가 내가 당신을, 당신이 나를 영영 잊어버리는 날이 온다고 해도 살아있어 나를 만나고 내 영혼을 만나고 내 눈물을 만나준 것에 대해 나를 기쁘게 하고? 슬프게 한 것에 대해 과거를 추억하고? 미래를 약속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진심으..